밑줄긋기
작성자 김기민
작성일 2012-02-27 (월) 08:07
ㆍ조회: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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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글
피조 세계 전체에 드러난 하나님의 활동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대대적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육하신 하나님이 팔레스타인에서 한 인간으로 사시며 행하신 기적들은 이 대대적 활동과 똑같은 일들을 다른 속도로, 작은 규모로 이룹니다. 그 주된 목적 중 하나는 한 인간이 능력을 발휘해 소규모로 이루는 일을 본 자들이 같은 일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그 배후의 능력 또한 인격적 존재임을, 참으로 2천 년 전에 우리 가운데 사셨던 바로 그분이심을 인정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기적이란 전 세계에 너무나 큰 글씨로 적혀 있어 일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이야기를 작은 글씨로 다시 들려주는 일입니다. 큰 글자로 적힌 이야기 중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부 기적들은 하나님이 이미 보편적으로 행하신 일을 국지적으로 행합니다. 또 어떤 기적들은 하나님이 아직 행하지 않으셨으나 앞으로 행하실 일들을 국지적으로 보여 줍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지난 일을 상기시켜 주는 기적도 있고 이루어질 일을 예언하는 기적도 있는 셈이지요.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창조하시고 그것이 뿌리로 물을 빨아올린 후 태양의 도움을 힘입어 그 물을 과즙으로 바꾸도록 가르치십니다. 그 과즙이 발효하면 어떤 특성들을 띠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노아의 시대부터 우리 시대까지 매년,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계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이교도들처럼 바쿠스나 디오니소스 같은 유한한 영의 공으로 돌리거나, 현대인들처럼 우리 오감이 파악할 수 있는 한계인 화학적이고 물질적 현상들이 실질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실 때, 가면은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심어 주는 데 그친다면 가나의 기적은 제구실을 절반밖에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포도원을 보거나 포도주 한잔을 마실 때마다 그 자리에서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 앉으셨던 분이 일하고 계심을 기억하게 된다면, 가나의 기적은 비로소 제 몫을 다한 셈이 될 것입니다. 매년 하나님은 소량의 곡식으로 많은 곡식을 만드십니다. 씨가 뿌려지면 증식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당대의 유행에 따라 ‘이는 케레스 신이다, 아도니스다, 곡물 왕 신이다’ 혹은 ‘이는 자연의 법칙이다’라고 말합니다. 매년 나타나는 이 기적을 클로즈업하여 번역한 것이 5천 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빵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탄이 돌로 빵을 만들라고 우리 주님을 유혹했으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몇 개의 빵을 가지고 많은 빵을 만드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할 뿐입니다. 말하자면 가문의 스타일이 있는 거지요.
 
치유의 기적들도 같은 패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의학적 치료를 다분히 마법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기적의 성격을 놓치기 쉬운데, 의사들은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법은 의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몸에 있습니다. 의사가 하는 일은 환자의 몸에 있는 자연의 기능을 북돋아 주거나 방해거리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편의상 의사나 약이 상처를 치유한다고 말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모든 상처는 스스로 치유합니다. 시체에는 어떤 약을 발라도 살이 자라나거나 상처가 낫지 않습니다. 어떤 신비한 힘, 그것이 행성을 움직일 때는 중력이라 부르고, 살아 있는 몸을 치유할 때는 생화학적 작용이라 부르는 그 신비한 힘이 모든 회복의 동인efficient cause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 에너지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치유되는 이들은 모두 내면의 치유자이신 그분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은 그분이 이런 일을 가시적으로 행하셨습니다. 사람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시면서 말입니다. 그분이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게 일하지 않으시면 생명체는 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단 한 차례의 파괴의 기적도 하나님의 모든 활동과 조화를 이룹니다. 그분은 육신의 손을 내밀어 무화과나무 한 그루에게 상징적인 분노를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해 팔레스타인에서 죽은 모든 나무는, 아니 어느 해 어느 곳에서 죽은 나무든지, 하나님이 나무에 무슨 일을 하셨거나 아마도 무슨 일을 그만두셨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죽은 나무는 없습니다.
 
사실 동정녀 탄생보다 중요한 기적은 없습니다. 보통의 생식 행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출산 행위에서 아버지는 어떤 기능을 합니까? 그의 몸에서 나온 어떤 극미한 물질 분자가 여자의 몸에 들어가면 수태가 됩니다. 그 극미한 분자와 더불어 그의 머리카락 색깔이, 그의 증조할아버지의 늘어진 입술이, 뼈, 힘줄, 신경, 간과 심장 같은 복잡다단한 인간 형태가 전달되며, 또 자궁 안에서는 그 태아가 재현하는 선행 인류 생명체의 형태가 전달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모든 정자의 배후에는 우주의 전全 역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 모든 정자 안에는 적지 않은 우주의 미래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통상적인 방법입니다. 물질의 창조에서 시작해 수태 순간의 일 초, 그 한 분자로 좁혀지기까지는 수세기가 걸리는 과정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인간들은 이 창조 행위가 발산할 때 다가오는 인상을 행위 자체로 오인하거나 게니우스 같은 어떤 무한한 존재의 공로로 돌립니다. 그러므로 단 한 번, 하나님은 그 일을 직접적으로, 즉시 행하십니다. 정자 없이, 정자 배후에 있는 수천 년의 유기체의 역사 없이 그 일을 하십니다. 물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단순히 한 인간a man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될 인간the Man, 유일한 참 인간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하나의 정자로까지 생명이 이어지는 과정과 함께 상당히 바람직하지 않은 찌꺼기가 여러 세기에 걸쳐 함께 실려 왔습니다. 그래서 통상적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생명은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 오염을 피하기 위해, 인류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단 한 번 그분은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셨습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활동이라는 큰 글자로 본 내용을 작은 규모로 빠르게 보여 주는 기적들은 이제 그만 다루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우주적 활동의 일부를 미리 보여 주는 두 번째 부류의 기적들은 하나님이 아직 행하지 않으셨으나 우주적으로 행하실 일의 전조가 됩니다. 그분은 한 사람(그분 자신이셨습니다)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모든 인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신약성경에는 모든 피조물이 마침내 썩어짐에서 벗어나 제 모양을 되찾고 다시 만들어진 영광스러운 인류를 보조할 거라는 암시들이 있습니다.18 그리스도의 변모,19 물 위를 걸으심20은 하나님이 훗날 인간을 깨우실 때 우리가 갖게 될 아름다움과 모든 물질에 대한 자연스러운 지배력을 엿보게 해 줍니다.
 
부활은 우리가 보는 변화들과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변화들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자연 현상의 ‘역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유기물 상태였던 물질이 서서히 무기물로 돌아가고 마침내는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 후 다른 유기물들에 사용되기도 하겠지요. 부활은 그것이 거꾸로 진행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그 원자들이 숫자 하나까지 그대로 최초, 또는 ‘자연적인’ 몸을 이루었던 각 사람에게 되돌아간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우선, 그 물질 단위들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현세에서도 우리 몸의 통일성은 그 구성 성분들이 서서히 복잡하게 바뀌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모종의 물질이 유기물로부터 몰려 나가는 모습을 보지만 부활은 유기물로 몰려오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것은 이미 본 영화를 거꾸로 돌려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자연의 역전입니다.

<피고석의 하나님> 중에서
 
 
 
기적의 목적을 비롯해 기억해야 할 여럿 중요한 개념이 있는데, 그중 하나
기적이란 '단축의 기술'과 관련 있음을 개인적으로 더 삶에 새겨 봅니다.
기적의 의미를 어떻게 이렇게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지 그저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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