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작성자 유진실
작성일 2012-01-16 (월) 14:28
ㆍ조회: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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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기심의 모순
자기 이기심의 모순

서구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행한 만행은 필설로 이루 다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땅을 훔치고 인간의 생명을 노략질하였다. 그리고 개명천지가 된 지금도 아프리카의 중요한 땅은 여전히 백인들의 소유로 되어 있다. 작년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은 자국 내 영국 출신 백인 소유의 토지를 몰수하였다. 물론 백인에 대한 흑인의 증오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독재 권력을 연장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더 컸겠지만, 그러나 흑인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 백인이 경작 가능한 전 국토의 65퍼센트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짐바브웨의 현실을 보면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불균형의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총칼에 의한 백인들의 토지 강탈이었다. 무가베의 토지 몰수 선언과 동시에, 짐바브웨의 식민 종주국이었던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연일 언론을 총동원하여 무가베를 광야의 무법자로 몰아 붙였다. 그러나 무가베는 대 국민연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영국인들은 우리더러 민주주의를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서 결코 민주주의를 행한 적이 없다.
그들은 우리더러 서로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서 단 한 번도 우리를 사랑한 적이 없다.
그들은 단지 말만 할 뿐, 그들이 말한 대로 우리에게 실천한 적이 없다.

참 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백인들의 이중성에 대한 여지없는 질타다. 자신들이 남의 땅을 강탈한 것은 정당시하면서도, 원래의 주인이 빼앗긴 땅을 도로 몰수하려는 것은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가공할 이율배반인가? 그 이율배반 속에서 과연 영원이 건져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을 어찌하랴.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전혀 다른 이율배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 말이다. 이런 삶으로야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찌 우리의 1초 1초가 새어 버리지 않겠는가?
유 럽에서 가장 진보적 국가인 네덜란드의 상하원은 동성연애자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을 제일 앞장서 제정하였다. 그리고 그 법이 발효되는 2001년 4월 1일 0시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세 쌍의 남성과 한 쌍의 여성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인 하객들 앞에서 암스테르담 시장의 주례로 사상 초유의 동성결혼식을 올렸다. 암스테르담 시장은 주례사에서, “오늘 우리는 네 명의 여자와 네 명의 남자를 결혼시키고 있다”며 기염을 토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남자가 여섯 명, 여자가 두 명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법안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의 주장인즉, 인간의 자유와 인권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란다. 한 인간이 자신과 같은 동성과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픈 자유와 권리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네덜란드의 동성연애자들은 합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시 법에 따라 이혼할 수도 있다. 나아가 어린이를 자기 자식으로 입양하여 호적에 올릴 수도 있게 되었다. 호모 부부든 레즈비언 부부든 간에 입양한 아이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은 것이다.
그 렇다면 동성부부에게 입양되는 어린이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동성부부는 그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결혼하지만, 그들에게 입양되는 어린이는 정상적인 부모 슬하에서 자랄 자유와 인권을 자기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박탈당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아이는 철이 들 때까지 남자를 엄마라 부르면서 살아야 한다. 또 다른 아이는 오래도록 여자를 아빠라 부르면서 자라야만 한다. 그런 가정 속에서 자라는 아이의 인격이나 정서, 사고나 심성이 정상적으로 성장치 못할 것임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의 자유와 권리의 이름으로 행하는 행위란 실은 또 다른 인간에 대한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의 모습 아닌가? 고상하게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부르짖으면서도 실상은 자기 이기심의 모순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 말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이 영원을 담은 그릇이 될 수는 없다.

무릇 주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모두 참된 크리스천, 진리의 향기를 풍기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으로서 져야 할 십자가를 지려 하지는 않는다.


모든 부부는 진정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언제나 상대가 먼저 양보해 주기만을 요구한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진리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부모인 자신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 자식 앞에서 진리의 본이 되지는 않는다.


모든 자식들은 효자효녀란 소리를 듣기 원한다.
그러나 나이 든 부모에게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자식은 흔치 않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든 교회와 교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말 새로워지자고 역설한다.
그러나 각자가 자신의 일터 속에서 크리스천답게 신앙의 양심을 좇아 살려 하지는 않는다.


서로 사랑하자고 힘주어 외친다.
그러나 항상 상대가 사랑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 주기만을 기다린다.


봉사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자기 눈앞의 이익에 관한 한 단돈 1원도 손해 보려 하지는 않는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신의 언행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진리의 열매를 거두기 소망한다.
그러나 열매를 위한 필수과정인, 먼저 썩어지는 밀알이 되기는 거부한다.


부활을 노래하고 찬양한다.
그러나 부활의 초석인 진리 안에서의 자기부인—자기 십자가는 마다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것이 여전히 이중성 속에 빠져 있는 우리의 실상이라면 영원을 건져 올리기는커녕, 우리의 삶이 속 빈 물거품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를 스쳐 간 그 숱한 순간들이 이미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렸을 테니 말이다.
주 님께서는 율법사나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 쉽게 말해 위선자라 부르셨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그들의 이중성을 꿰뚫어 보신 까닭이었다. 이 단어가 그리스어로 ‘휘포크리테스’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본래 배우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당시엔 인쇄술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일반인들은 고전 작품을 극장에서 배우의 대사를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일반인들에게 배우란 모두 동경의 대상이었다. 말하자면 휘포크리테스란 호칭 자체는 전혀 욕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똑 같은 단어를 ‘위선자’란 의미로 사용하셨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배우는 자신이 외운 대사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자신의 대사대로 살아야 할 의무는 더더욱 없다. 그의 대사는 무대의 막이 내리는 것으로 끝나 버린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배우가 아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읊기만 하고 삶으로 실행하려 하지는 않는다면, 그는 배우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을 믿는 신자일 수는 없다. 하나님 앞에서의 배우란 결코 칭찬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곧 위선자란 말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똑같은 단어를 ‘위선자’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셨다.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사람이 ‘외식하는 자’ 즉 위선자였다. 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성 사이로 주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이 허망하게 소진되어 버리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대로 살 것을 요구하신다. 말씀 안에서만이 자기이중성과 모순은 통합될 수 있고, 말씀으로 자기통합을 이루어 가는 삶만이 영원을 건지고 담는 진리의 그릇이 될 수 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다. 말씀 안에서 자기통합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될, 우리 자신을 위함이다.


_ 이재철, <<참으로 신실하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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