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작성자 김기민
작성일 2012-02-23 (목) 08:49
ㆍ조회: 1375      
IP: 119.xxx.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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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한국 경제가 세계 시장의 극심한 경쟁 속에서도 발전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60년대 산업화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조선, 철강, 자동차, 전기 전자, 반도체 등의 산업 덕분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제는 더 큰 경쟁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렵다. 벌써 중국이 무서운 추격을 시작했다. 기술 격차도 이미 현저하게 줄었다.
 
참여정부는 전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며 생긴 여진餘震을 잠재움과 동시에 지속적인 성장을 향한 현실적이고도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위해 숙고했고 결단이 필요했다. 밖으로는 경쟁국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해 수출 시장을 확대하고, 안으로는 부가가치가 높은 투자를 유치하여 광범위한 고용증대, 곧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확실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이것은 절체절명의 국가경영 과제였다. 
 
그럼에도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대한민국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계경제의 도도한 흐름 앞에서 아무 대책 없이 불평하고 저항하는 일로 세월을 보내기엔 다음 세대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앞선 자들의 시간은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국가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통상정책을 이행하는 것이 중요했고 그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을 종횡무진 활보하는 강대국들이 이미 만든 표준 혹은 기준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룰을 속히 익혀 제대로 실력을 겨뤄 보아야 했다.
 
이즈음 세계통상리그의 현장을 직시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부담은 되지만 결단을 내리고 갑시다!”라고 의지를 표명하고 끝까지 무게중심을 지켰다. 이것이 한미 FTA를 출범시키고 타결시킨 직간접적 원인이자 힘이었다. 이는 역사적 안목을 갖고 내린 판단으로 평가될 것이다. 한반도의 안정은 세계 평화와도 직결된다.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의 국력이 약할 때 주변국들의 힘이 한반도에서 충돌한 경우가 쉽게 발견된다. 세계 권력이 부딪치는 곳, 지정학적인 숙명을 짊어진 한반도를 두고 세계의 힘이 밀고 당기기를 멈추지 않는다. 급기야 전쟁이라는 막다른 상황까지 치닫는 경우, 한반도의 피해는 치명적이다. 중국의 속국화, 갑신정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에 이어 일제 식민통치, 그리고 해방 후 민족 분열로 인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외세에 휘둘리는 악순환을 거듭 경험했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책은 세계 권력의 긴장관계가 만드는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우수한 민족이다.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나라 빚을 갚기 위해 자기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국민은 없다. 일본은 한국 경제를 파탄시키고 예속화하려고 강제적으로 1,300만 원의 차관을 도입케 했고 그 돈을 한국을 지배하는 데 썼다. 우리 국민은 이 빚을 갚기 위해 남자들은 담배를 끊고 여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국가에 헌납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때 우리 국민은 1,300만 원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았다. 90년 후인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나라 빚을 갚기 위해 금을 앞다투어 내놓았다. 어느 퇴역 장성은 금으로 만든 별 계급장을 헌납하기도 했다. 감명 깊었다. 국민들의 열망은 뜨거웠다. 그 뜨거운 열망은 2002년 월드컵 4강 때 또다시 실현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뭉치면 우리의 숙원인 통일을 이룰 수 있고 국가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강국이 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민족의 애국심과 우수성이 쇄국적으로 활용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적 흐름 앞에서 대한민국은 왜소해질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을 추진하여 대한민국을 세계의 주류에 편입시킨다는 것은 국경을 해체해 경제 주권을 내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폐쇄적이고 소극적으로 미래를 대처할 것인가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맞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한미, 한-EU FTA를 비롯하여 수십 개 국가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나는 어떡하면 국민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까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념과 지역, 계층 간 갈등은 생각보다 깊었다. 대국민 차원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나는 한미 FTA를 반대한 이들의 열정과 나라 사랑을 높이 평가한다. 분명한 건 작지만 강한 나라를 목표로 우리 모두 소리를 내되 그 소리들이 모여 국가의 힘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통상 수장으로 믿고 따라 준 통상 협상가들의 헌신과 열정에 깊이 감사한다.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국제적 경쟁력이 진일보하였음은 분명하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어설프게 나열하는 것은 그들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한 가치를 절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밤낮은 물론 휴일도 없이 일했던 그들과 가족들의 희생을 모른 척할 수 없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차 협상 시 신라호텔에서 경찰병력을 지휘하다 과로로 쓰러져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안성 경위, 양허를 하나라도 더 받아 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고지대인 몬태나 협상에 참여한 후 아이가 유산된 직원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통상 협상가들 외에도 나를 도와준 동료 장관들, 특히 각별한 사이였던 고 박홍수 농림부장관, 그리고 청와대 실장, 수석, 비서관들 및 언론과 국회에 그리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미 FTA에 비판을 아끼지 않은 분들께 깊이 감사한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한미 FTA 협상 중간에 한-EU FTA 협상도 출범시키겠다고 보고드리자 노 대통령은 “나는 동서화합 대통령이 되고 싶은데 김 본부장 때문에 FTA 대통령이 되겠어”라고 웃으며 말한 적이 있다.
그분이 갖고 있었던 애국애족의 의지와 국익을 위한 뚜렷한 개방 철학이 있었기에 미국, EU를 비롯하여 45개 국가들과 FTA를 출범하고 타결시킬 수 있었다. 4년 반 동안 노 대통령은 내 요청을 예외 없이 경청하고 힘을 실어 주었다. 일면식도 없었던 내게서 국익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 열정을 알아보고 국민을 위해 내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인사차 봉하마을에 들러, 지난 5년간의 보고서를 쓰고 있다고 하니 완성되면 꼭 한번 보고 싶다 하셔서 “네.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좋은 어른이셨다. 무척 아쉽다.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중에서
 
 
 
나의 나라는 무엇일까.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펄떡이고 팔다리가 춤추는 그 나라는 내게 무엇일까.
 
나는 그 나라를 얼마나 의롭게 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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