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게시판
작성자 국효숙
작성일 2013-11-28 (목) 11:47
ㆍ조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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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서거 50주년-내가 써 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2

8. 이승훈


친애하는 조카 페이스위터에게

인간세계의 날씨가 제법 서늘해졌지? 유독 이런 시기에 좋은 먹잇감이 될 종자들이 아침저녁으로 눈에 들어오는 구나. 계절의 변화는, 원수가 환자들을 현혹시키는 수많은 가식들 중 하나란다. 푸르렀던 잎들이 울긋불긋 물들고, 따뜻한 차 한잔이 반가워진 순간의 느낌은 '어렴풋한 감사함'을 심어주기 위한 일종의 공격이란 사실을 너도 배웠겠지. 원수는 지금도 그걸 배려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있을 게야. 하긴 제 아무리 원수와 가까운 환자라도 환경의 자극 없이는 그 더듬이를 유지하기 어렵기 마련이지. 물론 지난 수세기동안 우리 조상들이 학문과 상식이란 덫으로 환자들을 교란시켜 온 결과, 오늘날 악마계에서는 계절변화 따위의 초급수법은 그다지 경계하지 않고 있다. 겨울의 끝 무렵, 눈이 녹고 새싹이 돋는 신선한 변화를 온 피부로 느끼더라도, 환자들은 이미 내재된 '객관적' 경험에 근거해 태연히 받아들인지 오래이다. 혹은 천문학적인 지식으로 계절변화의 원리를 설명할 수도 있을 테지. 그러한 사고에 따른 겸허한 행동방식을 '이성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단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냐. 이성이란 본래 원수가 환자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원수의 존재에 다다르도록 부여한 영역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그 단어는 우리가 원수적인 가치라고 부르는 것들(믿음이나 소망 따위의 것들 말이다.)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하는 능력이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애석하기도 하지. '내가 감사함을 느낀다.'로 부터 '지금 내가 느끼는 감사의 대상은 누구인가?' 라는 이성적 사고의 경로가 도리어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가로막혀 있는 셈이다. 자연히 감사함을 느끼는 감각도 무뎌져 왔지. 거리에서 단풍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자가 정신나간 인간 취급을 받는, 말 그대로 승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자 이 즈음에서 네가 이 승리의 시대를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간 나는 네 환자가 애니팡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대견하게 생각했었지. 기독교인들만 득시글거리는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네 환자에게는 마약이나 간음같이 공개가 꺼려지는 영역으로는 접근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애니팡이라는 가벼운 유흥거리가 경건의 경계를 효과적으로 모호화 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중독요소가 될 수 있었지.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라는 원수의 구절이 애니팡 하트를 연상시키는 촉매로 작용하는 대목은 가히 통쾌하기까지 했단다. 그러나 지난 10월 어느 일요일, 가을낙엽이 떨어지는 양화진 언덕에 앉아 애니팡을 하고 있는 네 환자가, 문득 '내가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을 때 이를 원수의 공격으로 판단해 그 생각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일은 참으로 실망스럽구나. 사상 최고 점수로 주간 랭킹1위를 부여해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네 의기양양함에 개탄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지.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너의 초기판단은 틀렸다고 볼 수 없다. 환자가 거하는 환경의 모든 요소들이 바로 원수가 만든 교묘한 공격시스템이기 때문이지. 허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환자가 때때로 강하게 인식되는 원수의 공격을 '신선하게' 받아들일 감각이 살아있는지의 여부란다. 너가 만약 지금과 같은 전략을 고수한다면, 네 환자는 원수의 저 기상천외한 공격을 인식할 때마다 신선한 느낌, 적어도 싫지 않은 느낌을 받을테고 너는 또 다시 더 큰 자극으로 차단해 버리기에 급급하게 되는 지루한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 뻔하다. 반대로 이 삼촌과 같이 악랄한 악마라면 그 환자의 머릿 속에 '내가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지?' 란 생각이 머물면서도 애니팡을 그만두지는 못하는 상황을 구현하도록 힘쓸 것이다. 즉 중독요소의 정착을 위해 부여했던 자극의 세기를 적절히 조절하여 원수가 심어둔 공격의 소리와 공존하게 만드는 전략이지.

환자가 애니팡에 취해 있을 때 또 다시 원수의 공격을 인식한다면 우선 그 공격이 완전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의 강한 쾌락을 부여하거라. 그리고는 이러한 생각을 주입하는거야. '이 기쁨도 어쩌면 주님이 주신 걸꺼야' 라고.. 별다른 의심이 없다면 일단 1차 성공이다. 이후에는 애니팡이 주는 쾌락을 서서히 줄여보거라. 그럼 환자는 처음 느낀 쾌락을 되찾으려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애니팡을 붙잡게 되면서도 원수에 대한 공격은 공격대로 받게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놓이게 되지. 애니팡이 주는 기쁨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이를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원수의 공격에는 아랑곳 않는 단계에 이르면 환자는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거야. (그가 명석하다면 말이다.) 그때 너가 둘 수는 '나는 왜 이렇게 무절제할까..' 류의 자책을 심어주는 것이다. 핵심을 파악하겠니? 너는 정신을 바짝차리고 절대 그가 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나락 직전의 순간에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자기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존심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해라. 너가 만약 집념을 발휘하여 그가 구원의 주체를 혼돈하는 상황을 일정기간 유지할 수 있다면, 너가 심은 애니팡이라는 요소는 진정 오랫동안 중독의 덫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인내를 가지고 기술적으로 요리한다면 끝내 환자가 구원의 주체를 원수로 파악했다 하더라도, 일전의 쾌락을 다시는 못누리게 될 것이 두려워 구원요청은 커녕 스스로 이성의 문을 닫아버리려 애쓰는 단계로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 그런 충성된 먹잇감을 다루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지.

일전에도 자세히 설명한 한 적이 있지만 쾌락은 본래 원수의 작품이다. 우리가 쾌락 그 자체로 원수의 공격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란 교만은 이 기회에 확실히 접어두거라. 어짜피 우리는 원수의 저 방대한 공격을 영원히 차단할 수는 없다. 원수의 공격을 허용하되 그것을 한낮 괴로움으로 여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목표가 전제되지 않는 한, 중독성과 쾌락의 전략은 자칫 아무런 의미없는 힘빼기가 되기 십상이다. 매일 밤 창녀와 몸을 섞고 있는 와중에도 히브리서 13장의 '음행을 저지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는 구절이 상기되어 (이를 무시하려 애쓰느라) 정작 성관계의 쾌락은 느끼지도 못하던 내 사랑스런 먹잇감을 기억하겠지? 결국 몇 해 전, 그를 지옥에서 만났던 그 흥분된 순간을 나는 한시도 잊을 수 없구나! 그 희열을 너도 맛볼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다음 편지를 기다리마. 너를 사랑하는 삼촌 웜우드

P.S. 물론 환자의 감각이 무딜대로 무뎌진 상황에서도 원수가 스스로를 극적으로 드러내 환자를 앗아갔던 전력은 수도 없이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상급악마들은 환자가 느끼는 중독요소의 쾌락을 가끔씩 극도의 수준으로 재현하곤 한단다. 자극의 세기를 다루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겠지? 허나 골치아픈 일은 아무리 고도의 통계수법을 동원해도 도통 원수의 타이밍을 계산해낼 수 가 없다는 거야. 나 원 가증스러운 작자같으니..


 

9. 조정수


사랑하는 엄우도(嚴遇導)

한국에서 활동하는 네 이름을 엄우도라고 고쳤다니 썩 괜찮은 아이디어로구나. 원수의 종들이 처음 그 나라에 도착했을 때도 그런 전략을 썼는데, 하긴 원수와 우리가 전략적인 면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게 접근하는 것도 환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 할 수 있지.

지난 번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보냈던 네 편지를 읽고 나는 그 나라의 실체를 네게 알려줄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도무지 그 나라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네 말도 얼핏 일리가 있긴 하다. 교회의 숫자나 규모를 보나 기독교 인구의 통계치를 보나, 기독교인 타이틀을 달고 사회의 고위층에 올라간 사람들을 보나... 도무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는 나라가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따져볼 때, (바로 여기서 너와 나의 수준 차이가 드러나지만 말이야) 바로 여기에 우리의 최고 무기가 숨겨져 있다는 걸 모르겠니?

무슨무슨 기도회라는 타이틀로 환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원수에게 들러붙는 광경을 보고 네가 느낀 공포를 나 또한 짐작할 만하다. 나도 처음 그들을 보았을 때, 아 이놈의 나라는 포기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 허나 사랑하는 엄우도, 넌 그들의 기도 내용을 한번 잘 들어보기는 했니? 물론 우리는 환자들이 원수에게 무엇이든지 간절하게 염원하는 모습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기는 한다만, 그 내용을 잘 들어보면 우리가 공포를 느낄 필요가 전혀 없는 기도문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단다.

쉽게 설명하도록 하마. 그들의 기도 내용에서 원수의 이름을 빼고 다른 잡신들을 넣었을 때, 말이 안 되는 기도를 보기라도 했단 말이냐? 하다못해 동네에서 오래된 바위나 나무 따위를 넣어 봐도 별 차이가 없는 기도들 말이야. 원수의 나라와 원수의 의의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그저 자신들의 성공만을 기원하는 그런 기도들이 태반이라는 말이다! 이건 그 옛날 원수의 종들이 투입되기 전 정화수 떠놓고 비나이다비나이다 중얼거리는 거랑 아무 차이도 없잖느냐.

최근에는 대입수능시험을 앞두고 엄청난 인파가 새벽부터 기도회에 몰려 드는 걸 너도 보았을거다. 우리로선 정말 진절머리 나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지. 하지만 그 환자들의 기도를 가만히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두려워하기는커녕 우리가 기뻐해야 할 내용이 꽤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는지 모르겠구나. 그저 우리 애가 다른 애를 제치고 일류 대학 가서, 또 다른 애를 제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또 다른 애를 제치고 좋은 집안과 결혼하고, 또...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깔아놓은 경쟁구도에 절대 순응하는 기도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기도는 우리가 만든 세상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기도란다. 원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달라고 했지만, 환자들은 그 반대로 기도하도록 만드는 거야. 우리의 뜻을 하늘에서 이루어달라고 떼 쓰도록 만드는 거지.

헌금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는 옛날부터 심청이(한국에서 활동한다면서 이 정도는 이름은 이미 알고 있겠지) 가 제 아버지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대가로 바친 것처럼 헌금을 바치는 환자들도 많더구나. 이것도 복채나 마찬가지지. 원수가 궁핍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환자들을 볼 때면 웃음만 나오지만, 이런 사실을 염두해 두면 그저 네 환자의 헌금 액수에 깜짝 놀라는 애송이 짓 따윈 안 하게 될 거다.

아무튼 오늘은 한국에서 이름까지 바꾸면서 활동하는 네가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격려하고자 그 실체를 알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말거라. 이 놈의 나라를 향한 원수의 애정이 특별한 것도 같으니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배신할지도 모른단 말이다.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10. 남세권


사랑하는 플리펀시에게

얼마 전, 네가 전해오는 소식에 참으로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구나. 너의 환자가 드디어 스마트 폰 계열에 합류했다는 소식이야말로, 내가 그동안 누누이 강조하고 격려해왔던 바가 아니냐.

네 환자는 스마트 폰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면서도, 그것의 유용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더구나. 사실 그것을 지키는 균형이야말로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말이다.

이미 그가 스마트 폰을 산 순간부터, 우리에게 유리한 교두보를 확립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신실한 원수 진영의 사람들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너무나 쉽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 번의 편지에 너는 환자가 원수의 책 앱을 다운로드하였다고 매우 불안해하였지. 이제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때나 그 책을 묵상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염려와 함께 말이다.

하지만 너의 염려는 지극히 초보적인 생각이다! 너란 신참 악마들의 미숙함이란.. 크게 염려할 필요 없다. 그것을 다운로드 한 것 자체는 우리에게도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너의 환자가 그 책을 날마다 가까이 하는 지극히 불행한 사태에 직면할 위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더불어서 그가 그 책을 경히 여기고, 점차 실제적으로 멀어지는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렴. 그동안 “조용한 시간”에 따로 묵상하기를 즐기던 그의 마음을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다. 이제는 어디서나 읽을 수 있기에 굳이 따로 떼어놓고 진지하게 묵상하지 않는 태도를 갖게 할 기회란 말이다. 그저 습관적으로 읽어나갈 가능성도 농후해지지. 지금까지 우리에게 입증된 바에 의하면, 이전 시대보다 오히려 더 성경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는 통계가 나왔단다.

환자가 원수의 집에 가는 길에 그 책은 놓고 가더라도, 스마트 폰은 놓고 가지 않는 의식 속에 무엇이 그 중심을 차지하는지 입증하지 않니. 더욱이 원수 그 작자가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는 그 시간에도 스마트 폰의 전원 끄기를 주저하도록 하는 것이 너의 성공 비결이 될 것이다.

그것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들의 마음은 허점투성이다. 조금만 손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유혹한다면, 얼마든지 그 시간을 우리들만의 놀이터로 만들 수 있지. 그 찰나의 순간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긴다면 우리에게는 더더욱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매우 두려운 결과가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자의 마음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 같다’라는 식의 사고를 지속적으로 흘려보내렴. 매우 가벼운 것으로 여기게 하란 말이다.

사실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고, 우리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주고 마는 원수의 책이 앱의 형태로 작아진 것은 참으로 획기적이고 놀라운 전략이었다. 사실 그 원수의 책은 우리의 위대한 아버지께서도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참으로 무력하게 만드는 주범이었지. 지난 번에도 다 잡았던 환자를 놓쳤던 너의 경험이 있지 않느냐!

하지만 핸드폰 속으로 들어간 그것의 영향력은 단지 크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도 작아지고 말았다. 사람들의 말마따나 그 책의 본질은 무게의 무거움에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사실 글자의 크고 작음도 문제가 아니지. 그 내용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사실이지 않느냐.

사람들은 그 책의 “크기의 작고, 큼”은 본질이 아니라고 애써 말한다만, 사실 생각해보면 무게의 차이는 단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차이에서 오지 않겠니. 이전 시대에는 아무리 무게가 무겁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중요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그 속에서 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꼴을 보자니 배알이 뒤집히지 않았었니. 더욱이 그 앞에서 내가 그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란.. 다시는 생각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는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편리함과 빠름”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는 그 책의 실질적인 무게마저 줄이고 말았다. 더 이상 원수의 집으로 향하는 자들의 손에는 그 두려운 책이 들려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단지 스마트 폰만이 들려 있을 뿐이야. 결국 그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작아지고 만 것이야.

따라서 가장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사실은, 더 이상 그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경건하지도, 진지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사실이고 말고. 단지 크기와 외양의 차이가 이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꾸나. 곧 원수의 책들이 더 이상 인쇄되지 않는 그날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너의 사랑하는 삼촌 웜우드

11. 김영훈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70년 만에 다시 편지를 보내게 되었구나. 예전에 저질렀던 치명적인 얼간이 짓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고 꼴도 보기 싫지만, 그 동안 몰라볼 정도로 노련한 유혹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여 더는 과거를 탓하지 않으려고 하니 더 이상 실망을 시키지 말기 바란다.


지난 70년 동안 환자들의 세상에서는 그 전과 같은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고 있지. 하지만 국지적인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원수는 어김없이 더러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고난 중에서 원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 그 자체는 우리나 지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소위 원수네 진영에서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이라 부르는 것이지. 물론 우리와 같이 영적인 실체를 볼 수 없는 벌레 같은 인간들을 대상으로 그 동안 벌려온 공작들로 인해 이러한 전쟁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 버러지들이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원수와의 전쟁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 순간의 쉼도 없이 일어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거든.


먼저 해야 할 일은 전쟁이라고 하면 멍청한 환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를 영화라든지 게임과 같은 가상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환상으로,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것으로 여기도록 끊임없이 조작하는 것이야.


실제로 이러한 전쟁은 환자들의 생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는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환자들은 자기 인생은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고 자유라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 이 싸움의 핵심이지. 그런데 환자들의 생각이라는 것은 주로 방송이나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거든. 원수가 아무리 주장해도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기분 나빠하면서 절대로 굽히지 않으려 드는 것을 위대한 인간 정신의 승리라고 믿도록 해야 할 것이다.


포탈 운영자를 담당한 꼴리우즈(Ccoliuze) 동지와 긴밀히 협력하여 환자들이 계속 말단의 본능을 자극하는 기사들로 덮어버리면, 원수가 아무리 애를 써도 대부분의 환자들의 정신 속의 전쟁은 이미 우리 편의 완벽한 승리로 끝날 수 밖에 없어. 또한 드라마, 광고, 연예가 뉴스 등을 보면서 환자 자신 또한 마땅히 저러한 삶을 살아야만 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궁상맞게 사는 것은 전적으로 원수의 농간에 놀아난 탓이라는 피해의식과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겨나도록 집중 공략해야만 한다네.


원수를 믿는다는 것은 늘 환자 자신에게 손해일 뿐이라는 생각을 절대로 빼먹지 않도록 확실히 주입시키는 것이 우리 싸움의 가장 중요한 전략임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12. 김정주


사랑하는 윔우드에게...

환자가 점점 몸이 피곤하다며 그 피곤한 육체를 벗어버리고 싶다는 내용을 읽었단다.

그래.. 네가 맡고 있는 환자뿐만 아니라 그 환자의 친구들도 평일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몸이 피곤하다고 생각할거야..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있잖아.

그래서 인간들은 피로를 풀고 쉬어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거야.

그러나 토요일과 일요일에 푹 쉬지 못하고 그 다음날이 되면 우선적으로 월요일을 싫어하게 되지 월요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어야 하는데 이틀동안 쉬어서 몸이 잘 안 움직인다고 하거나 일을 할려니 하기 싫어서 일은 안하고 쉴려고 하지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것들을 월요병이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지.

그래서 나는 환자와 환자 친구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지친 육체들을 어떻게 피로를 날릴까 이야기를 하도록 했으면 좋겠어. 모여서 원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보다 자신들에 어떻게 하면 쉬고 즐거움을 줄까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거야....

1박2일이나 2박 3일로 자신의 집을 떠나 자연으로 가서 쉰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고 일요일에 원수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 없도록 하는거야. 가족들이 중요하고 친구들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육체가 너무 힘들어서 쉼이라는 선물을 주어야 한다는 거지

그러면 환자는 원수를 만나러 갈시간도 없고 또한 여행을 떠나 쉼을 얻는 것 보다 지친 육체를 가지고 와서 다시 월요일에 일을 하게 하는 거야.. 왜냐하면 여행을 떠나는 준비, 그리고 편하지 않는 공간과 잠...등이 피로를 더해 줄거야

일을 하기 싫어서 환자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인터넷 뉴스나 쇼핑, 게임을 하면서 그들의 사회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힘든 육체를 쉬게 하는 거지.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 노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조그만한 쾌락을 주는 것이지.

그러다 나중에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환자의 육체는 더 힘들어지게 되면 다시 휴식을 원하게 되고 쳇바퀴 돌아가듯이 움직인다면 환자는 원수를 만나러 가는 시간도 힘들어서 안가게 되고 점점 멀어지게 되면서 자신에게 휴식이라는 선물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

원수가 주는 휴식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지....

만약 그래도 환자가 떠날려고 하지 않는다면 환자에게 무언가를 주는게 좋을 것 같다.

환자에게 지금까지 일한것에 대한 보상을 주는 거야..

잠을 더 주거나... 아니면 티비를 보면서 쉬도록 하는 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등산이나 운동을 하도록 해서 원수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상의 시간을 주는거지. 그 시간에는 원수를 잊어버리고 자신에게만 보상이라는 선물을 주도록 하는 거야.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원수를 만나러 갈 시간이 없도록 만들어 보도록 해봐.

인간들은 무언가 준다면 좋아 할거야. 글새 환자 자신도 원수들과 멀어진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13. 최익창


스크루테이프 Jr 에게.

뭐? 네가 맡은 환자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친해지고 싶다고?

세상에... 그 녀석이 네가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라주니까 감동이라도 먹은 게냐? 아예 통성명이라도 할 기세구나. 아무래도 네 아버지 되신 스크루테이프 심연숭고부 차관께서 오래 전에 하신 말씀을 나 또한 해줘야할 것 같구나. 하지만 그 보다 더 깊이 있게 설명해주마.

환자가 너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아 생각을 공유하는 영역이 넓어지면 종종 녀석을 흡입해 버리고 싶을 만큼 기꺼워 보일 때가 있지. 그래서 슬쩍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그 심정,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우리처럼 드러내고 과시하길 좋아하는 체질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숨어 지내야 하는 이 비극적 숙명을 온전히 받아들일 악마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명심해라. 그건 모든 유혹자가 수시로 겪는 감정이고 그걸 극복하는 것이 상급 유혹자로 올라서는 첫 번째 관문이다. 그런 욕구가 들 때 마다 지하 깊숙이 계신 아버지를 기억해라. 너야 아직 과시할 만한 것도 별로 없지만 지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어떠하겠느냐? 누구보다도 탁월하시고 능력 많으신 분이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코믹만화 속 캐릭터로 희화화되는 수치와 조롱을 감내하고 계신다. 원수도 비슷한 조롱을 안티들에게 당하지만 그 자야 원래 인내를 미덕 어쩌고 하면서 참는 걸 좋아하는 이상성격이다 보니 별 대단할 거 없지만 우리 지하의 아버지는 전혀 좋아하지도 않는 걸 견디셔야만 하니 세상에 이만한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이 어디 있겠느냐? 정작 따지고 보면 우리처럼 인내가 큰 족속은 없지.

넌 이렇게까지 우리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중요하지, 중요하고말고.

얼마 전, 원수의 교회에서 행하지는 설교를 정탐하고 와서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이런 엄청난 비밀이 예배당에서 공공연히 선포되고 있고, 원수의 책에 적나라하게 쓰여 있는데다가, 그 무시무시한 책은 아무나 볼 수 있게 지천에 널렸는데, 도대체 우리가 생존할 길이 있겠느냐는 거지. 하지만 그건 과민반응이다. 백날 그런 설교를 들어도 현대 교인들은 신기할 정도로 피상적으로 믿으니까. 작금의 시대는 세련된 매너에 지성이 결합된 교인을 모범적인 신앙의 표상으로 치는 반면, 영적인 세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광신자로 취급하기 십상이지. 이게 다 우리가 자존심까지 꺾어가며 정체를 숨기는데 사활을 건 목적 아니더냐. 이제는 교인들이 마귀니 귀신이니 하는 존재가 입으로는 실존한다고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기독교 특유의 상징체계 정도로 인식하게 됐지. 그 결과 어떤 모습이 펼쳐지더냐.

교회 안에서 다툼과 분열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통쾌한 광경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지 않더냐.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하면서도 모든 걸 혈과 육의 싸움으로 여겨주니 우리로선 감사할 밖에.

원수의 자녀라면서도 원수의 책에서 읽은 대로 매사에 자신의 사고과정에서 우리 악마들의 활동을 분류해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게 네 눈엔 신기하겠지? 우리에게 치명타인데도 말이야. 거듭 말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못 돼. 우리가 꼬드기는 것들을 객관화시켜 보면 환멸을 느낄만한 생각이라도 일단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확신을 갖고야 마는 미련한 존재들이지. 우리가 밀어 넣어주는 생각과 그것을 받아 담는 자신의 그릇이 분리될 수 없는 일체형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공들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사실, 은밀한 잠행을 지속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성격이 더 난폭해지지.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격려 차원에서 좋은 선물을 주마. 네가 활동하는 동방의 그 작은 나라를 조사해 보니 굿판과 제사가 활성화 돼있더구나. 몇 군데 연결해 줄 테니 기운 딸리거든 놀러가서 절도 받고 장난도 치면서 갈증을 해소하고 오너라. 놀다 보면 에너지가 빵빵하게 충전돼 있을 거다.

네 계급에선 쉽게 차지할 수 없는 상급 놀이터이니까 감사히 여기는 것 잊지 말고.

너의 존경스런 멘토이자 대형(大兄) 되시는

웜 우 드

14. jin-woo Park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내가 듣기로는 얼마전에 네가 새로운 환자를 맡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동안 너는 내 지도 아래서 많은 노하우를 전수 받았고, 그 기술들을 잘 활용해서 많은 환자들의 영혼을 이 지옥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될게야. 우리는 더욱 치밀하고 똑똑해져야 한다. 원수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환자들을 꾀어간다는 것을 명심해라. 이번 환자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 태생으로 모태신앙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녀석이야. 한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사회 중 하나로 이 점을 잘만 이용하면 이번 환자도 안전하게 우리 아버지의 품으로 데려올 수 있을게야. 이 편지에서는 네게 한국의 모태신앙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몇가지 공략들을 알려주마.

모태신앙이라는 것이 ‘모 아니면 도’라서 ‘빚좋은 개살구 크리스천’(아주 편한 먹잇감이지.)이거나, ‘원수의 집요한 구애에 항복한 영혼’(원수의 표현으로는 ‘거듭난 영혼’이라고 하던데, 우리한테는 확실히 빼앗긴 영혼일 뿐이다.)일 수 있다. 불행하게도 네가 맡은 환자는 불과 2년 전에 원수와 진정한 의미로 대면했더구나. 손바닥만한 책을 무심코 며칠동안 읽더니, 완전히 변해버렸어! 세상에 절대적 자연법이 있다느니, 말도 안되는 헛소리만 지껄여 놓은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인데, 이것이 그 환자놈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더 이상 원수가 자기가 그리던 단순한 존재가 아니란 걸 알아버렸어. 네 환자는 지금 매우 과도기적인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어떻게 환자를 구워 삶느냐에 따라 그 맛있는 영혼을 우리가 삼킬 것인지, 또다시 식탐 많은 원수에게 빼앗기고 말 것인지가 결정된다. (이 교활하기 짝이 없는 원수같으니! 어떤때는 원수의 교활함이 우리의 그것보다 더 악랄한 것 같아 치가 떨린다.)

환자는 그동안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제기하지 않은 것, 원수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저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만족한 것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게다가 믿음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이때, 환자는 매우 신앙적 지식에 갈증을 느끼는 상태다. 네가 해야 할 일은 환자에게 엉터리 지식을 제공하고, 제대로 된 신학 지식을 막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매우 어려운 지성을 요하는 지식에까지 환자를 접근시키고, 그것을 통해 개인적인 지적 성취에 도취되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면서 우월감을 가지게 하는 재료가 되도록 해라. 그래서 원수를 알기 위해 시작한 공부가 결국에는 원수와의 소통을 가로막게 만들어 버리라는 거다! 자기 논리와 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원수의 손길을 막는 단단한 보호막이 되도록 해라. 그래서 그 동안 자기만의 허상으로 만들어진 신에 대한 엉터리 믿음에서 드디어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이 과도기에, 또 다른 모습의 허상 신을 환자의 마음속에 몰래 심어주도록! 물론 반지성주의 속에 갇혀 있는 환자들이 더 손쉬운 먹잇감이지만(다행스럽게도,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 질문하거나, 의문을 가지는 환자들은 드물다.), 이번 환자는 그리 단순한 먹잇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한 방향으로 맹목적인 신념을 강화하는 것이야. ‘지식의 성취’만을 믿음에서의 최고 측면으로 믿게 하거나, 성령 체험이라는 미명하에 ‘신비한 체험’에만 몰두하게 하는 거지. 이렇게 되면 환자들은 스스로 눈을 가리게 되고, 결국에는 원수를 찾을 수 없게 될 게야. 두 방면에 대해 균형을 잡아갈 때는 원수에게 향하는 길이 훤하게 보일지 몰라도 어느 한쪽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환자는 곧 길을 잃게 된다. 원수의 아들이 말하는 '그 나라와 그 의'에 대한 건 안중에도 없어지게 될 거야. 이 방법은 우리가 지난 수천년 동안 그렇게 많은 환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이지!

사회적으로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물신주의에 충만해 있는 한국에서 네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부분은 환자로 하여금 다양한 이론들을 넘어서는 진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아주 촌스럽고 유치하다’고 느끼도록 하는거야. 여기서는 환자의 주변 친구들을 이용하는 것이 매우 큰 효과를 낼 수 있을게다. 환자가 진지한 물음을 던질때마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아주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라. 그러면 환자는 곧 자신이 외톨이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의문들을 외면해 버릴테니까. 아주 다행스럽게도 환자가 사는 오늘날의 시대에는 각 학문 분야마다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이론들이 즐비하지. 가능한 해결책은 수도 없이 많지만, 딱 떨어지는 해결책은 절대로 없지. 인간은 앞으로도 영원히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줄 절대 이론을 가질 수 없을 거야. 환자도 그걸 인식하고 수용하게 해야 해. 여기서 네가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환자가 원수에게로 나아가는 믿음도 이러한 종류의 것이라고 은연중에 믿게 만드는 거야. 원수에게로 나아가는 길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고, 거기에는 절대적 가치란 없다고 생각하고 나면, 신앙이란 단지 환자의 삶을 좀더 경쾌하게 해주거나, 개선시켜주는 일종의 권장될만한 좋은 생활 습관이 되는 거야.

혹여나 환자가 여러가지 신학적인 지식에 대해 해박해지고, 개인적으로 한가지 입장을 고수하며 그것이 진리라는 생각을 가지더라도 걱정말거라. 우리는 이런 종류의 환자를 많이 다루어보지 않았느냐? 스스로 믿는 바가 원수의 권위마저 능가해버리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지 않으냐 말이다! 자기 외의 모든 입장(원수는 그들을 한몸을 이루는 형제요, 자매라고 표현하더구나, 참으로 역겨운 표현이지.)을 싸잡아 거짓이라고 판단해 버리게 하면 돼! 원수 안에서 하나로 묶여있던 그 징그러운 연대를 끊어내고 서로 괄시하고 정죄하고 모함하게 만들면 된단다. 그건 우리의 주특기 중에서 아주 기본적인 기술이지 않으냐? 원수의 아들(예수)을 바라보며 한곳으로 나온 환자들이 그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서로 등진 채, 뿔뿔히 흩어지게 만드는 거야. 웜우드, 명심하거라. 비록 환자가 새로 거듭난 상태이기는 하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도록. 환자가 새롭게 되었다고 자부하고 만족하는 바로 그때, 아주 사소한 문제로 고꾸라뜨리거라. 환자는 스스로 ‘거듭난 것이 착각’이었다는 ‘착각’을 덤덤히 받아들일게야. 노파심에 말이 너무 길어졌구나. 너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크다.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15. 박석민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네가 요즘 관심 있게 보고 있는 환자의 소식을 듣고서 답장을 보낸다. 네 환자가 최근 실패를 경험하고서 큰 절망에 빠졌다고 들었다. 네가 사용한 ‘실패’라는 전략이 꽤 유용한 것 같구나. 아래에 있는 아버지께서도 너를 기뻐하실 게다. 하지만 그가 절망의 늪에 빠졌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너도 알다시피 그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우리 원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곧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될 게다. 그리곤 실패에 대한 면역이 생겨버려서 다음번엔 얄팍한 실패로는 결코 그를 넘어트릴 수 없을 것 같구나. 그 방법은 오히려 비기독교인들에게 쓸모가 있을 게다. 그들은 한 번 실패를 경험하면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버리게 되지. 다시 생각해 봐도 아주 탁월한 전략이야.

그러나 환자가 기독교인인 만큼 다른 전략을 모색해야겠구나. 예전에 써봤던 전략도 괜찮을 것 같다. 아직도 나는 그 때를 잊지 못하고 있단다. 우리는 그 때를 황금기라고 부르지만, 아마도 인간들은 중세시대나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 같구나. 환희에 찬 우리 악마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구나. 모든 것이 우리의 편이었지.

그 때는 성경에 금테를 둘렀단다. 사실 그 책에다가 금테를 두르자고 할 때, 많은 어린 악마들이 반대했단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존경하는 교활한 악마들은 적극 찬성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책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지고 말았지. 말 그대로 그 책의 멋진 껍데기를 본 것이란다. 그 책 속의 비밀을 읽지 못하도록, 그리고 심지어 궁금하지도 않도록 만들었다. 읽지 않고서도 읽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지. 그러나 기쁨도 잠깐, 종교개혁자들이라고 하는 환자들이 그 책에 눈을 뜨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단다. 그 순간의 방심이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한 것 같구나.

지금은 그 책이 베스트셀러로 꼽히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그 책을 소유하고 있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일지도 모르겠구나. 다행히도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으니 말이다. 단지 교회에 갈 때만 챙기는 준비물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지.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종교 심리를 잘 이용하면 된다. 그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기독교인이 된 것 마냥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다.

무엇보다 그 책을 성직자들만의 전유물로 만들어라.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로부터 멀리 동떨어져 있게 해야 한다. 벌써 몇몇 성직자들은 우리 편이 되어 그 책의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단다. 단지 사람들의 종교 심리를 자극할 뿐이지. 어떻게든 환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 책을 세상에서 가장 따분하고 지루한 책으로 생각하게 될 게다.

네 환자도 책에는 관심이 많다마는, 그 책을 읽는 데에는 공을 들이지 않더구나. 혹시라도 그가 그 책의 비밀에 관심을 가지려고 할 때는 ‘그 책은 어려워’라고 계속해서 부담감을 심어줘야 함을 잊지 말거라. 그 책은 원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마는, 필요하다면 단지 몇 구절만 읽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꼭 명심해라. 단 몇 구절이다. 그러면 네 환자는 마치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척하며, 서서히 우리 편이 되어가고 있을 게다.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16. 정인영


사랑하는 웜우드에게

아파트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느냐? 환자는 직진 중이었고 어떤 인간이 좌회전으로 끼어들다 부딪혔는데, 그 인간이 오히려 수리비를 청구했단 말이다. 먼저 진입했느니 어쩌니 하면서. 환자가 머뭇거리는 동안 너는 왜 가만있었지? 설마 10만원의 재정손실을 입히고 싶었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겠지? 너도 내 밑에 (인간들 시간으로) 70년 넘게 있었다. 똥인지 오줌인지는 가려야 하는 게 아니냐? 너도 인간들 사이에 있으면서 오염이 된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돈이란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아. 초록색 노인네 10장이 없어졌다는 게 뭘 의미하느냐? 돈을 쓰는 것은 나쁜 일이고 돈을 버는 일은 좋은 일이란 건 인간들이나 하는 소리다. 왜, 군인들이 하는 얘기 있지? 남의 물건 훔쳐놓고도 위치이동이니 하면서 모두가 국방부 재산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그 헛소리야말로 인간들의 경제생활을 정확히 말해주지. 인간들이 소유하는 모든 것은 결국 위치이동이야! 돈이란 위치이동을 돕는 전표고. 군인들이 국방부 소속이듯 자신들이 어디 소속인지만 알면 아주 간단한 문제지. (원수가 인간들을 ‘청지기’라고 명확히 지칭했음에도 인간들은 언제나 딴전을 핀단 말이다.) 따라서 재산이니 소유니 하는 것들이란 옆 내무실의 방독면을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하단다. 때가 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지. 따라서 10만원을 쓰게 만들어서 재정손실을 입힌다 한들, 환자의 소유욕과 분노를 끌어내지 못하는 한, 넌 헛짓거리를 한 거다. 아니 괜히 정비사 한 놈한테 용돈을 준 셈이지. 사랑스런 웜우드, 나의 분노와 짜증을 네게 위치이동 시키고 싶구나. 시간 내서 한번 들르렴. 이왕이면 내 화가 극에 달했을 때를 놓치지 말고.

바야흐로 권리의 시대다. 예전에는 남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했지만 이젠 손해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 선생들이 훌륭히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는 게지. 마찬가지로 요즘은 임금이 백성을 사랑할 의무가 아니라 국민들이 대우받을 권리가 근간이야. 오죽하면 결혼하는 인간들이 결혼서약서가 아니라 결혼계약서를 쓰겠냐.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할 의무는 배우자에게 손해 보지 않을 권리로 바뀌었단 말이다. 남을 돕는 의무나 손해 보지 않는 권리나 결국 같이 잘 살자는 건데 무슨 차이냐고 말하고 싶겠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의무란 남을 보는 것이고, 권리란 자신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의무는 천국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단어지만(물론 기쁨이니 하는 재미없는 단어로 복원되겠지만 말이다.) 권리는 그렇지 않지. 천국에서는 아무도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며 왜 필요한지 모를게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무기는 ‘우선권’이었다. 앞뒤 가리지 말고 직진 차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밀어 붙였어야지. 어떠한 경우에도 손해 보게 하면 안 된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누구의 잘못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는 더 그렇다. 권리를 주장하는 습관을 차근차근 들여놔야 결혼계약서도 작성하고, 법을 어겨놓고도 비싼 변호사 사서 권리행사하고, 지구는 병들어도 전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핵발전소를 계속 짓는 거란다.

네가 환자의 머릿속에 권리를 밀어 넣으려 하면 원수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어떤 권리도 없다는 말을 속삭일게다. 그렇다면 넌 권리를 박탈당했던 인간들을 살짝 보여 주거라. 권리야 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기둥이라고 생각하도록 말이다. 최근에 나온 ‘변호환자’인가 뭔가 하는 영화의 예고편에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오열을 하지 않던. 그 장면만 봐도, 권리를 지키는 것이 곧 인간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잊지 말거라. 권리는 의무를 다하는 자가 다른 사람을 지키려고 할 때 비로소 해롭지 않게 쓸 수 있는 낱말이야. 지금처럼 의무에 관심 없는 자가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는 아주 더러운 말이 된다.

‘그럼 환자가 10만원을 물어주지 않게 하면 됩니까?’라고 묻지 않길 바란다. 누가 돈을 물어주는지는 중요치 않아. 잘 잘못을 가리는 건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지. 잘못한 놈이 물어주면 되잖아.

혹시 환자가 양심의 소리니, 권리의 유보니 하는 단어에 귀를 기울인다 싶으면 교회에 가서 사람들에게 얘기하도록 시켜라. 백이면 백, 왜 물어 주냐고 할 게다. 재판을 붙어도 네가 이길 테니 배짱을 튀기라고 말이야. 가끔 원수의 해괴한 전략에 몸서리치다가도 십자가 달린 건물마다 포진해 있는 든든한 동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단다.

웜우드. 넌 나에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바칠 의무가 있다. 난 네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얻을 권리가 있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먹이를 자꾸 놓치면 곤란해. 계약사항을 잊지 말라구.

너를 사랑하는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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