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011-04-12 (화)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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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경종민 교수가 전하는 '우리가 행복할 이유'
프롤로그

나는 카이스트에서 23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학생들에게는 전공지식만 가르치면 주어진 임무는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자들과의 연구를 통해 좋은 논문을 쓰고 그들이 사회에서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문성과 실력을 갖추어 주는 것까지가 내 관심 영역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는 ‘제자들이 졸업을 하고 세상에 나아가 과연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공계 학생이건 인문계 학생이건 간에 그들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전문 지식 외에 많은 것―인생의 지혜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직업이나 지위도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좋은 직업을 가졌다 하여 자동적으로 행복한 일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살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려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도 기술, 즉 행복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중요한 것에는 확실히 그것을 이루는 기술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러다가 나는 나의 고민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사느냐’를 이미 넘어섰음을 보게 되었다. 만약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고서도 그 끝에 허무함을 느낀다면, 과연 삶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를 안고 십여 년을 방황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까지의 긴 여행을 종식(終熄)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이 문제와 해답을 학생들, 아니 내가 아닌 타인에게 들고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자기의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 힘들게 매를 드는 것이 부모라면, 선생도 당연히 그의 제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신이 찾은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최고의 답과 그 답을 얻는 과정을 보여 주려는 시도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과정에서 설사 예기치 못한 창피와 어색함이 따라오더라도 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시간에도 주위에서는 많은 학생들의 삶과 영혼이 캠퍼스 이곳저곳에서, 또 사회의 여러 곳에서 드러눕고 쓰러지고 있었다. 고교시절까지 승리자로 살아온 것 같았던 학생들이 대학의 자유스런 분위기를 접하면서 방황하다가 급기야는 좌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다가갈 적절한 도구와 방법을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게 된 하나님의 본질과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의 본질이, 그들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설명하고 그들을 올바른 삶의 길로 설득하며 격려하고 싶었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떤 선각자에게 듣고 어떤 성인(聖人)의 삶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 것도 아니고, 내가 은혜를 받게 된 모든 과정을 다 관찰하고 정리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젊은 시절의 고민, 고통, 낭비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만은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결과는 좋았지만 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이러한 회상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내가 살면서 만났던 여건과 기회보다 좀더 나은 것을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믿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이셨고, 막상 하나님이 절실하게 필요한 믿음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들을 다가오게 하실 수도 스스로 나아가실 수도 없어 보였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은혜를 체험한 이후 이쪽 세계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받은 은혜를 확인하고 은혜의 감상에 젖게 만드는 것들뿐이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성급하고 교만한 자가 남들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갑갑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도하게 시작한 경기의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승리보다는 항복에 가깝다. 하나님을 어떻게 변론(辯論)할 것인가. 하나님을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풀어낸단 말인가. 아무리 빨리 달리는 자에게도 빛은 여전히 빛의 속도로 앞서 달리듯, 인생의 모든 경주는 우리의 발걸음이 아무리 빨라도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마무리 지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존재와 생명을 있게 하시며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흑암을 깨뜨리는 빛과 같은 존재이시다. 빛의 속도, 아니 빛 자체에 대하여 아무것도 바꿀 수 없듯이 빛을 만드신 하나님에 대하여 더더욱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많은 시간을 지나고 먼 길을 돌아왔으나 나는 같은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만났을 뿐이다. 살아오는 동안 만난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내 전문영역이 아닌 곳을 서툴게 건드리게 되었다.

여러 생각과 우려에도 이러한 생각여행이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을지, 그저 조용한 떨림으로 기다리고자 한다.

2006년 2월 
***

경종민 교수님은 <경종민의 인생백서>(홍성사)의 저자이자 카이스트 교수입니다. 학생 네 명과 교수의 자살로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카이스트 사태를 보며, 교수님의 글에서 함께 공감할 바가 있을 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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