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C.S.루이스, 기쁨의 하루

서평 정인영(경기도 광숭초등학교 교사)

《C.S. 루이스, 기쁨의 하루》 출간을 즈음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S. 루이스, 기쁨의 하루》를 읽고

웜우드.

비할 데 없이 쓸모없는 녀석 루이스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도 ‘기쁨의 하루’라니. 원제인 ‘천국의 임무The Business of Heaven’를 교묘하게 바꿨더구나. 그나마 ‘천국의 임무’라고 하면 국방의 의무, 성도의 의무 같은 무거운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었다. 허나 이젠 누구나 부담 없이 책을 집어 들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루이스에 정통한 월터 후퍼가 엮었다. 루이스가 ‘원수’에게로 넘어간 이후 우리 진영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 건 알고 있겠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알을 까놓는 바람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원수의 추종자들이, 그것도 골수 추종자들이 셀 수 없이 늘어났다. 바퀴벌레 같은 놈. 월터 후퍼도 그중 한 놈이야. 루이스가 휘갈겨 놓은 위험한 낙서를 잘 모아서 여러 권의 책으로 엮었지.

내용도 가관이다. 녀석의 글 중에서 유해하고, 위험하고, 지저분한 부분은 모두 모아 놓았더구나. 천국, 지옥, 기쁨, 고통, 사랑, 종교, 교리, 구원, 재림, 부활, 기적, 정치, 경제, 예술, 교육…… 도대체 안 건드린 영역이 뭐냐? 기독교의 핵심 주제는 다 들어 있잖아. 그동안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이 주제들을 진부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지. 그런데 어느 모로 보나 해로운 이 녀석이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끌어 모으고 있다. 녀석은 진부하지 않은 언어로 진부한 주제를 말하는 능력이 있거든. (어떤 주제든지 지루한 언어로 표현하는 너와는 영 딴판이구나!)

책 1월 31일을 봐라.(1월 30일과 2월 1일도 같은 맥락이지.) 부처,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공자, 예수를 비교해 가며 원수의 구원 교리가 얼마나 이상하고 유별난지 보여 주고 있잖니. 다른 종교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새롭게 다가오겠냐.

또 5월 8일부터 13일까지를 봐라. 감히 ‘진보에 대한 믿음’에 흠집을 내려 하다니. 우리가 지난 수백 년 동안 공들인 사업인데 말이야! 현대의 인간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인생과 우주의 배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가이자 감독이라는 거야.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킬지는 자신들이 결정한다는 거지. 모두 과학과 진보에 대한 맹신 덕분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인간들을 다시 배우의 자리에 앉히려 하고 있다. 재림이니 말세니 하는 말들을 떠벌이면서 말이야.

이 외에도 《고통의 문제》, 《순전한 기독교》, 《네 가지 사랑》, 《기적》 같은 책들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던 글들을 많이도 실어 놓았다. 하지만 지옥의 임무를 잊지 말거라. 우린 한파 속에서도 봄을 준비해야 하느니라.

일단 책값이 비싸다는 데 희망을 걸자. 그동안 나왔던 녀석의 책 중 가장 비싸다. 하지만 인간들은 연말연시 선물용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지. 선물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최대한 막으면서 이 시즌이 끝나기를 기다리자.

이미 이 책을 읽은 인간들에게는 두 가지 방어책이 있다. 우선, 글이 발췌된 원래의 책을 읽지 못하도록 한다. ‘하이라이트 독서’야말로 게으름과 교만을 동시에 부추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 다음으로, 성경 대신 이 책으로 묵상하도록 한다. 성경을 읽기 귀찮아하는 인간들에게 얼마나 좋냐. 품위도 있어 보이고.

형언할 수 없이 귀찮은, 이 녀석의 책은 이후에도 계속 나올 거야. 호흡을 가다듬어라. 장기전이 될 게야.

너를 사랑하는 삼촌, 스크루테이프.

(서평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형식으로 써보았습니다. 책 속 9월 20일의 글이 영 맘에 걸리네요. “자신보다 악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려 할 때는 자신의 마음속 악한 격정들을 상상 속에서 풀어 놓기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