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회보-이야기하는 붓(07년 10월)

  
 나의 남편은 경기 며칠 전부터 그날 입을 복장을, 신발을 걸어 놓고 기다리는 열렬한 축구광이다. 자기가 헤딩으로 두 골이나 넣었다고 흥분해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눈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곧 수술했고, 상처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고개를 완전히 숙이고 있어야 하는 형을 받았다. 자기가 고개를 너무 꼿꼿이, 뻣뻣이 들고 살았나 보다고, 머리 좀 숙이라는 하나님의 익살스런 계획이라며 활동 중인 그에겐 힘든 치료인 엎드려 지내기를 시작했다. 그 때, 이탈리아에 있는 동생에게서 “오늘 밤 달 꼭 봐. 너무 대단해”라고 거울 들고 달 보는 남자 스케치를 넣은 팩스가 왔다. 병원 다니랴, 약 제 때 넣으랴, 해가 뜨는지 비가 오는지 경황없이 지내는 우리에게 달 보라고 한다. 엎드려 저녁 먹고 큰 거울하나 들고 정원으로 나왔다. 고개를 못 드는 사람 옆에서 큰 하늘 쳐다보는 게 안 되어서 같이 거울 속의 달을 오래오래 보았다. 거울 속의 달은 더 환하고 신비로웠고, 그 달을 내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 뒤로 거울을 들고 다니며 너무나 익숙해진 일상의 정경들이 새롭게 보여서 그 거울 속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테두리 속에서 더욱 빛나는 달처럼 우리가 가진 틀이나 한계도 우리의 삶을 더욱 진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 같다. 결국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한계 때문에 삶이 귀하고 빛나는 것처럼.

-김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