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회보-이야기하는 붓(07년 12월)

요술놀이
 
 

Bird drawing 
김원숙 그림 24x18 mixed media on canvas 2007

어느 시인의 어린 딸이 물었다. "아버지는 왜 시인이 되었나요?"
시인은 딸이 빨리 커서 이 질문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일곱 살 때였단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흐린 구름 속에 있던 해가 나와서 갑자기 온 세상이 환해졌단다.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들판이 빛나기 시작해서 아~ 하며 보고 있는데, 예쁜 새 한마리가 내 어깨에 내려앉았단다. 그 새도 금빛 세상을 구경하느라 조용했고, 나는 오랫동안 그 새가 쉬어 가도록 양팔을 벌리고 내가 나무인 척하고 가만히 서 있었단다. 내가 나무가 되어 보니 그 들판은 더욱 아름다웠단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왜 이리 늦었내고 야단을 하셨지. 나는 그 들판에서 본 광경들을 다 설명해 드리는데 어머니는 다 듣지도 않고 더욱 화를 내시면서 다음에 한 번만 더 길에서 놀다 늦게 오면 저녁밥을 안 주겠다고 벌을 주셨지. 난 그때 내가 그 아름다운 기억들을 제대로 어머니께 전하지 못한 나의 언어의 실패를 깊이 느꼈단다. 그리고 커서 꼭 시인이 되어서 내가 보는 것을 그대로 전할 수 있게 되기를 약속했단다."

나는 내가 눈과 마음으로 보는 것을 그리느라고 시작하지만 그리다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안 보이는 것들까지 그려지는 이 신기한 요술놀이에 아직도 홀려있다.
이 나이에 하루 종일 매일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인 것을 감사하면서.  

-김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