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회보-이야기하는 붓(07년11월)

Moon Night Sonata 
김원숙 그림 oil on canvas, 61*76.2cm, 2006

보름달. 매달 뜨는 기적인데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같이 놀랍고 신기하다.
그 맑고 둥근 빛 아래서는 천지사방이 그리고 내 머리 속이 다 조용히 멈추어진다. 이런 온전한 아름다움도 못 보고 가끔 한 달을 넘겨 버릴 만큼 한눈팔며 급하게 사는 게 아닌가 안쓰러워진다.
어릴 때 이런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늦게 돌아오신 아버지가 자고 있던 우리 형제들을 다 깨우셨다. 우리는 졸린 눈들을 하고 피아노 앞에 벌서듯이 둘러앉아서 아버지의 달밤의 공연을 봐드렸다.
"옛날에에~ 베토벤이란 천재음악가가~ 귀가 먹어가~이런 크~은달을 보면서 이런 유~우명한 피아노곡을 지으셨다아~" 하시며, 월광곡을 치기 시작하셨다.
왼손의 저음으로 달빛 그윽한 밤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는 월광곡. 그런데 몇 소절 안 가서는 "야, 느그들, 다아~ 졸고 있는 거냐? 들어가서 누워 자~라" 하며 중단하셨다.
매번 같은 공연이었다.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서는, 그 어려운 곡의 도입 부분만 연주하실 수 있으셨음을 눈치 챘어도 아버지가 보름달 아래 연출하셨던 드라마를, 몇 번씩 하는 재방송이었지만 매번 같은 감동으로 새롭게 들었었다. 옆에서 어머니는 시시하다고 하시면서도 한 번도 말리지 않으시고...

요즈음도 달밤이 황홀할 때, 귀머거리 베토벤의 모습과 월광곡의 첫 부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휘영청 밝은 달을 더 환하게 하신 아버지를 감사해 하면서.....

                                                                                                                  -김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