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일기
작성자 김기민
작성일 2011-12-16 (금) 15:52
ㆍ조회: 2309      
IP: 119.xxx.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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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맥도널드, 한국 상륙
'편집일기'란에 처음으로 글을 올리게 되어 영광이네요. ^^
얼마 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조지 맥도널드 선집>을 책임편집한 김기민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리를 통해 여러분과 좀더 가까이서 이야기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C.S. 루이스를 좋아하던 저는 루이스를 제대로 좋아해 보자는 취지로
루이스의 책들을 넘어
루이스에게 영향을 준 책, 루이스가 즐겨 읽은 책, 루이스가 독자들에게 추천한 책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 열매로 홍성사에서 두 권의 책이 나왔는데
<루이스의 서재>와 <조지 맥도널드 선집>이 그것입니다.
전자가 루이스를 알기 위해 펼친 정확하고 자세한 지도라 한다면
후자는 그 지도를 따라 내딛는 첫발이라 할 수 있겠네요.
 
<조지 맥도널드 선집>은 그 자체로만 보면 
루이스의 스승이라는 조지 맥도널드의 명성에 못미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맥도널드의 역간된 동화들과 루이스 저서들을 자세히 읽어보신 분들은
생각이 다르실 겁니다.
아마도 루이스의 우주가 맥도널드의 글에 굉장히 좁은 부피로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맥도널드의 글이 루이스에 의해 어떻게 변주되었는지 그 빙산의 일각을 조금 소개해 드립니다.
(긴 하이픈을 기준으로 그 앞쪽이 맥도널드의 글, 뒤쪽이 루이스의 글입니다.)
 

자아

우리 주님은 독창적이 될 생각을 결코 하지 않으셨습니다. /
 
자아라는 지하감옥에서 나오는 문은 이웃 사랑, 하나뿐입니다. /
 
의무를 선택하는 이가 참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의무를 생각하지 않고, 의무라는 이름마저 잊은 채 의무를 행하게 되는 사람이 완전한 사람입니다. /
 
지옥의 유일한 원리는 이것입니다. “나는 내 것이다!” _맥도널드
 

 
진정한 새 자아(그리스도의 것이면서 동시에 여러분의 것인 자아, 그의 것이 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러분의 것이 된 자아)는 그 자체를 추구하는 한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자아는 그리스도를 찾을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립니까?
아시겠지만 이것은 많은 일상사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자기가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있는지 신경 쓰는 동안에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습니다. 문학과 예술에서도 독창성에 신경 쓰는 사람은 독창적이 되지 못하지요. 반면에 단순히 진실만을 말하려고 노력하다 보면(전에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에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십중팔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창적이 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삶의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관통하고 있는 원리입니다.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입니다.  _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인간의 인식

마켐노이트는 생김새가 이상했다. 이마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데다가 낭떠러지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화가 나면 작은 눈이 파랗게 빛났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노랗고 푸른 빛이 났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일 때 그 눈이 어떻게 빛나는지는 알 수 없다. 마켐노이트 공주가 자기 말고 다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나마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도 마켐노이트가 자기 자신에게 어느 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왕은 경솔하게도 마켐노이트 공주가 아주아주 영리하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사실 마켐노이트 공주는 마녀였던 것이다. 공주가 누군가에게 마법을 건다면 그 사람은 마법에서 절대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마켐노이트는 그 어떤 심술쟁이 요정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으뜸가는 심술쟁이였고,
그 어떤 영리한 요정들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으뜸으로 영리했기 때문이다. _맥도널드
 

 
이처럼 자의식과 자유를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조건은 피조물이 하나님을 이해하며, 그 결과 스스로 하나님과 구별되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은 인식하지만 동료 피조물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적나라한 선택-자아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것인가, 하나님보다 자아를 더 사랑할 것인가-을 할 자유밖에 없습니다. _루이스 <고통의 문제>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길은 망원경으로 봐야 보일만큼 높이 오르고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만큼 깊이 내려갑니다.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깊은 곳까지 내려갑니다. 우리는 그분이 아시는 것처럼 말과 개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순전한 아들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르친 바와 같이 우리의 아들됨을 통하여 이 하등한 형제자매들이 구속救贖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명의 주인께서 수많은 피조물들이 당하는 집요한 고통을 방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마 18:7]! 주님이 관심을 갖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여도 다 보고 계시며 다 아십니다. _맥도널드
 

 
하나님께는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다차원적인 영원의 한 측면에서, 어린 시절 여러분이 파리 날개를 잡아뽑고 있는 모습을 영원히 보고 계시며, 학생 시절 아첨하고 거짓말하며 정욕에 빠져 있는 모습을 영원히 보고 계시고, 중위로 복무하던 시절 비겁하고 오만했던 순간을 영원히 보고 계신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_루이스 <고통의 문제>

● 완전함을 향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다고 저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아끼지 않으신다는 말은 원수의 거짓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뒤뚱거리며 처음으로 걸음을 떼는 어린 아들을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또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장성하여 늠름하게 자기 걸음을 걷기도 전에 만족하겠습니까? _맥도널드
 

 
우리는 은유적으로만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도 하나님이 만들고 계신 작품으로서, 하나님은 우리가 일정한 특성을 갖추게 될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_루이스 <고통의 문제>
 
그렇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실패할 때마다 용서를 구하고 다시 일어나 거듭 시도하십시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에 대한 착각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최상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실패를 용서받을 수 있기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지요.
치명적인 실패는 오직 하나, 완전을 포기하고 그 이하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_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크신 하나님

아버지와 절대적으로 조화된 상태와 노예의 상태, 이 둘 사이에는 절대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복종하거나 반역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반역하는 경우, 그 반역조차도 그들 안에 있는 아버지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_맥도널드
 

 
여러분은 아이에게 처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아이의 손을 붙들고 함께 글씨를 씁니다. 그러니까 그 글씨가 쓰여지는 것은 여러분이 그것을 쓰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사랑하고 추론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추론하기 때문이며, 그가 우리 손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_루이스 <고통의 문제>

기적

아버지께서 저것은 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그 돌에게 떡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창조의 명령은 다른 창조의 명령과 모순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주님은 배고프시고, 굶주리셨지만, 아버지께서 만드신 물질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군중을 먹이신 기적 안에서도 그런 식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였고 떡은 여전히 떡이었습니다. ……이 기적들에는 출현기간의 단축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기적이 다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천년이 걸릴 일을 하루 만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그분은 시간을 만드십니다. ……천년 걸릴 일을 하루 만에 이루신다고 해서 그 안에 원래부터 담겨있는 기적적인 특성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곡식을 자라게 하는 기적이 수천 명을 먹이는 기적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버림받은 듯하나 보리밭에서의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움이 만들어 내는 창조의 힘보다는, 단박에 즉시 나타나는 창조의 힘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_맥도널드
 

 
이제 앞서 말한 분류 이야기로 돌아가 가장 처음 것인 다산多産의 기적부터 살펴봅시다. 이 부류에 속하면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입니다. 이 기적은 포도주의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는 선포입니다. 포도주는 야훼 하나님이 주시는 복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거짓 신 바커스 배후의 참 실재이십니다. 매년 자연 질서의 일부로서, 하나님은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그분은 물과 토양과 햇빛을 주스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식물 유기체를 창조하시며, 그렇게 만들어진 주스는 적절한 조건이 맞춰지면 포도주가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분은 이렇게 늘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계신 것입니다. 모든 음료가 다 그렇듯 포도주 역시 결국 물이 변해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번은, 어느 해 한 번은, 성육신하신 분으로서 그 과정을 단축시켜 보이셨습니다. 순식간에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물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 식물 섬유조직 대신 어떤 토기 항아리들을 사용하셔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사용하셔서 그분이 하신 일은 그분이 늘 하고 계신 그 일입니다. 기적이란 말하자면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이 만들어 내는 그 일 자체는 평범한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때, 자연 속으로 들어온 것은 전혀 반反자연적인 영이 아니라는 것, 비극이나 눈물이나 금식 등을 그것 자체로 사랑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물론 특별한 목적을 위해 그런 것을 허용하거나 요구하실 때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시려고 태고로부터 포도주를 베풀고 계신 바로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_루이스 <기적>

거룩한 현재

다음 시간, 다음 순간은 100년 후나 마찬가지로 우리 손에서 벗어나 있고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 있습니다. 다음 순간을 염려하는 것은, 내일이나 천년 후의 어느 날을 염려하는 것 못지않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어느 쪽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하십니다. 내일 일 중에서 오늘 준비해야 할 부분만이 오늘의 의무입니다. 해야 할 일과 겹치는 순간만 신경 쓰면 됩니다. 그 다음 순간은 하나님이 만드시기 전까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_맥도널드
 

 
한마디로, 미래만큼 영원과 닮지 않은 건 없어. 미래는 시간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하게 찰나적인 부분이지. 과거는 꽁꽁 얼어붙어 더 이상 흐를 수 없고, 현재는 영원의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우리가 창조적 진화니 과학적 인본주의니 공산주의 같은 사상체계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사상들은 인간의 애착을 미래에, 그 찰나성의 핵심에 붙들어 놓지. ... 우리가 바라는 건 전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_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자유의지

하나님은 어떤 문도 강제로 열고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집 주위로 폭풍우를 보내실 수는 있습니다. 징계의 바람이 불어 문과 창문이 덜컹대고 집의 기초까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십니다. 사랑의 발이 문지방을 넘으려면 안에 있는 자의 손이 먼저 자발적으로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분은 안에서 문이 열리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모든 폭풍우는 사랑의 포위공격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모습은 그분 사랑의 반대쪽 면일 뿐입니다. 바깥쪽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는 집안입니다. 사랑은 압니다. 사랑이 들어가기 전까지 집은 그저 하나의 장소에 불과하다는 걸. /
 
“주님, 저를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둠 속에 머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도 용서해주세요.” “아닙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한 가지 일이 바로 악을 선택하는 죄, 구원을 거부하는 죄입니다. 그것을 용서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죄에 참여하게 되니까요.” /
 
그분이 노크를 하시면 바로 문을 열 수 있도록 빗장에 손을 얹고 있으십시오. _맥도널드


 
“하지만 버스를 못 타는 불쌍한 유령들은 어떻게 합니까?” “타고 싶어하는 사람은 다 타게 되어 있으니 걱정 말게.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어.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인간들과, 하나님의 입에서 끝내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 주마’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게 된 걸세.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게 없다면 지옥도 없을 게야. 진지하고도 끈질기게 기쁨을 갈망하는 영혼은 반드시 기쁨을 얻게 되어 있네.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_루이스 <천국과 지옥의 이혼>

죄악을 대하는 태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천국은 지옥을 조금도 담을 수 없습니다. 마음속이든 호주머니 속이든, 이런저런 마귀를 간직하려 해선 안 됩니다. 사탄은 내쫓아야 합니다. 털 하나, 깃털 하나까지 모두! /
 
정말 비참한 광경이었다.
비참한 광경을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돌리고 그냥 잊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모습을 없애려고 했다.
이 조그만 소년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불타는 칼을 움켜쥐고 악마와 싸우러 가는 천사와 같았다.
이제 다이아몬드가 싸워야 하는 악마는 비참한 광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비참한 광경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혜로운 군인처럼 가장 약한 고리를 가장 먼저 공격했다. _맥도널드
 

 
우리는 철저히 증오해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악, 특히 우리 자신의 악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36편은 "내 마음이, 내게 악인이 품고 있는 악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각자는 자신의 마음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악의 표본이라는 사실을
자기 반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터져 나오는 5절 말씀, 하늘처럼 높은 자비와 산처럼 견고한 의를 향한 비상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저는 바위에 바벨론의 갓난아기들을 메어치라고 말하는 시편 137편의 그 끔찍한 구절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내면세계에 있는 갓난아기 같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알코올 중독이나 뿌리 깊은 증오심으로 자랄 수도 있는, 유아기 단계의 사소한 방종들이나 사소한 원한들 말입니다. 늘 우리에게 매달려 졸라 대고 애교를 부리는 그것들은 어찌나 자그마하고 연약해 보이는지, 그것들을 거부하면 마치 동물을 학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들은 늘 우리에게 칭얼댑니다.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최소한 이 정도는 해 주실 줄 알았어요", "한번 생각은 해 볼 수 있잖아요"라고 말입니다. 137편에는 그런 온갖 귀여운 아이들과 맞서는(그것들의 애교는 당해 내기 어렵습니다) 최선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곧 "그 조그만 녀석들의 뇌를 깨부수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_루이스 <시편 사색>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시편 137:9) 
 
 


 


선집 머리말에서 루이스는 말합니다.
"내가 그의 글을 인용하지 않고 쓴 책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이 뛰어난 기독교 스승들의 이 같은 사상의 변주를 살펴보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배움의 장이 되더라고요.
생각할수록 거대한 광맥입니다.
제3자의 설명에 따라 배워 가는 건 재미가 떨어지고 시간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대가가 직접 가르쳐 주지 않아도 대가의 글에서 대가의 가르침을 발견해 내는 그 짜릿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루이스가 맥도널드 사상에서 캐취해 내는 그 명철은
루이스 책만 보며 느끼는 감탄을 몇배로 증폭시켜 줍니다.
그것을 캐내는 작업을 여러분께도 감히 강추드리는 바입니다.

조지 맥도널드의 동화들 가운데 몇 권이 국내에 이미 번역되었지만,
직설적으로 표현된 그의 기독교 사상은 <조지 맥도널드 선집>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네요.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던 제 5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되어 뿌듯함이 큽니다.
그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책에 최선을 다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적어도 제 아이들 앞에서 편집자로서 자랑할 일, 앞으로 그런 책으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기쁜 날 되세요!
 
    
   

 
이름아이콘 오리
2011-12-16 17:50
편집자로서 이 책은 꼭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 하는 바로 그 책을 만들었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네요. 앞으로도 루이스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쉽고도 정확하게 알려 주시길요, 그 거대한 광맥을 더듬는 지도를 잘 만들어 주시길요...^^
   
이름아이콘 츄루
2011-12-20 14:38
늘 김 대리님의 바탕화면에 자리잡고 있던 맥도널드 배경이 기억나네요. 축하드려요~
   
이름아이콘 hune
2012-01-31 09:31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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