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란 무엇인가(정용섭)

‘주기도’에 관한 글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학위논문에서 에세이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학자·목회자에서 복음주의권에 속한 이들까지 필자들의 신앙적 스펙트럼도 다양합니다. 여기에 제가 또 하나의 글을 보태게 되었습니다. 이게 잘한 일인지 확신은 없습니다. 상투적인 핑계를 대는 걸 용서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주기도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출판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후배나 제자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한다는 느낌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문장이 ‘하오체’가 되었습니다. 이런 투의 글은 일반 대중에게는 거북스럽습니다. 전체적으로 손을 볼까 하다가 그냥 두었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놓으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해를 바랍니다.

《주기도란 무엇인가》는 마태복음 6장 9-13절을 제 나름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전문적인 성서주석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설교도 아니고 큐티도 아닙니다. 본문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문학적 통찰은 영적인 통찰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생명의 신비를 그 바탕에 두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주기도만이라도 바르게 공부하면 여러 부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본질이 왜곡되면 그 결과도 왜곡되기 때문에 본질을 바르게 아는 건 중요합니다. 기도 인플레이션이라 할 정도로 기도에 매달리는 한국 교회가 신앙과 삶에서 바람직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기도의 본질을 모르거나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기도의 도구화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설득시키는 영적 태도입니다. 이 책이 기도의 본질을 아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기도 영성을 토대로 쓴 ‘교회력에 따른 공동기도문’을 부록으로 실었습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부터 창조절 열두째 주일에 이르는 52주 기도문에 성탄절 기도문을 포함해서 전체 53편입니다. 이 기도문의 특징은 하나님의 구원 통치, 계시, 영광을 높이는 주일공동예배에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드리는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용도 사사롭지 않고 공적입니다. 간구라기보다는 차라리 송영입니다. 개인들은 예배 전에 읽는 것도 좋을 겁니다. 

졸고를 묶어 주신 홍성사 가족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종교개혁 494주년 기념주일을 앞두고

정용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