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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년, 한국 사회, 하나님 나라> 본문 발췌나사렛 예수는 헬레니즘화된 개인주의가 유대 사회를 지배하던 당시에 아주 보수적인 원칙을 선포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오래전 12지파 시대의 모세율법을 존숭(尊崇)했고 그것을 어기며 사는 동시대인들을 향해 예언자적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모세오경과 예언자들이 가르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우애 공동체였다. 부재지주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유민들과 소작인으로 전락한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게 이런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 메시아 취임 설교로 알려진 나사렛 회당 설교에서 그는 청중에게 오랫동안 잊혀졌던 희년법을 구현하라고 했다가 큰 반발을 샀다. 희년을 선포하는 이사야 61장 14절을 인증하면서 청중에게 “희년 실천을 촉구하는 이사야 말씀이 오늘 여러분의 귀에 응했습니다”라고 선포했다. 듣는 자들에게 실천 의무를 일깨운 것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토라 말씀은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의 권력 상층부로 진입한 엘리트들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들로 가득 차 있다. 7년에 한 번씩 종들을 풀어 주고, 채무를 탕감하고, 50년에 한 번씩은 땅의 원소유자들에게 땅을 넘기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계약 공동체 구성원들이 준행해야 할 의무임에도, 힘써 부를 일군 성실한 지주들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한 부자가 50년에 한 번씩 낙차 큰 자기강하를 통해 자발적인 궁핍화를 감수하는 일은 자신의 탐욕과의 쟁투를 요청했을 것이다. 선한 부자들의 상황이 이러했을진대, 부당한 방법으로 지주가 된 자들에게는 면제년이나 희년 계명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이었을까? 누가복음 4장 19절 이하의 나사렛 회당 사람들의 반응에서 보이듯이 희년 실천을 촉구하는 예수의 설교는 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였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사로잡힌 자들만이 모세오경의 희년 강령들을 실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야 이런 희년적 사랑과 우애 실천이 일어났다. 성령의 첫 열매인 원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고, 압도적인 성령의 감동으로 초대교회는 물질적 유무상통의 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행 2장; 4장). 그런데 이런 나사렛 예수의 하나님 나라 메시지가 바울에게 오면, 개인구원의 메시지로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복음초청의 메시지로 바뀐다. 가장 큰 이유는 토라의 가르침을 실천할 사회·정치적 맥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후 70년 이후 모세오경을 만들어 냈던 팔레스타인의 영토적·국가적 실체인 이스라엘은 사라져 버렸다. 결과적으로 바울서신들과 신약의 기타 책들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쓰여진 글들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제국의 헬레니즘화된 도시 공동체에 흩어져 살던 소수의 이주민 공동체에게 보내진 글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세오경의 토지법, 재판법, 가정법, 민법, 상법 등을 지중해 일대의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이 희년 정신에 담긴 이상적인 삶의 원칙, 모세오경이 상정한 강력한 상호돌봄적인 계약 공동체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팔레스타인을 넘어 국제주의적인 영적 공동체의 구성원리로 활용했다. 그는 기근을 당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이방 교회의 물질적인 기부로 돕는 일을 자신의 필생의 선교 사명 중 하나로 설정했다(고후 89장; 롬 15:16, 2527). 이것은 단지 일과성 구제활동이 아니라 희년 율법이 설정한 이상적인 공동체 정신을 디아스포라 교회 안에 접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비록 그는 희년 율법을 자신의 이방 교회에 문자적으로 적용하지는 못했으나 그것의 핵심인 계약 공동체주의나 나사렛 예수가 그토록 강조했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랑 실천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른 신약성경의 문헌들도 마찬가지다. 신약성경의 많은 책들이 비록 과도한 종말론과 임박한 재림신앙으로 채색되어 있지만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도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서와 요한복음, 요한서신들 그리고 대부분의 바울서신들은 한결같이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 나라의 완성 시점에 실현될 과격한 사랑과 돌봄을 펼치도록 격려하고 촉구하고 있다. 바울은 지극히 조밀한 종말론적인 형제자매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사역에 매진했다. 형제우애가 구현된 사랑의 공동체를 지중해 여러 거점도시들에 형성하여 예루살렘의 성도들과 교제, 즉 신코이노니아라고 불리는 물질적 유무상통을 실천하는 데까지 성장하도록 도왔다. 바울은 가난한 자들의 구제와 물질적 유무상통까지 포함하는 복음의 교제를 이방 교회에 가르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국가 공동체를 떠나서도 실천가능한 신앙의 중간 공리(middle axiom)를 개발해 낸 것이다. 여기서 한국 교회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배울 점이 있다. '01. 희년과 하나님 나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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